1전시실이 1960~1970년대의 세간을 통해 해녀들의 살림살이와 어촌마을의 형태, 그리고 세시풍속 등을 보여 준다면, 한 층 위에 있는 2전시실은 불턱과 물질 장비 등을 통해 본격적인 해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해녀들은 하루 대여섯 시간씩 물질한다. 한 번 바닷속에 들어가면 1, 2분씩 숨을 참고 해산물을 채취한 후 물 밖으로 나왔다. 숨비소리는 턱까지 차올랐던 숨을 물 밖으로 나와 내뿜는 소리다.
‘불턱’이라 불리는 공간도 생소하다. 해녀들에게 불턱은 옷을 갈아입고 물질을 준비하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에게로 이어지는 수련의 장이며 의사소통과 결정의 장 역할도 겸했다.
지금은 단단한 건물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제주 동쪽 해안에는 곳곳에 옛 불턱의 흔적이 여전히 존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주 해녀들이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녀는 물질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상궁,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해녀들은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물소중기(하의)’, ‘물적삼(상의)’이라 부르는 무명으로 된 해녀복을 착용했다. 고무 옷이 보급된 70년대 들어서야 장시간 작업이 가능하고 능률도 크게 올랐다.
2층 전시실에는 해녀복 외에 수경, 테왁 망사리, 빗창, 까꾸리 등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그 시절의 도구들 또한 유리관 안에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해녀들은 19세기 말부터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도 진출했다. 이를 출가 해녀라 부르는데 이들은 당당히 제주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리고 해녀들은 지역에도 헌신적이었다.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일을 도왔으며 학교 건물을 신축,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