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개, 그 이상의 이야기
재밌는 질문을 만났다. 한라산은 왜 오름이 아닌가요? 한 지식인(?)은 답했다. 너무 커서 그렇다고. (당연하다. 한라산은 남한 최고봉이니까. 1,950m). 한라산은 주화산이고, 오름은 소화산체(기생화산, 독립화산)니 규모의 차이야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오름이 볼록볼록 엠보싱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기기를 더하자면, 오름도 엠보싱도 열과 압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오름과 딱 맞아떨어진다. 양보를 좀 하자면, 수만 년 지질 활동(대부분의 오름은 홀로세에 형성됐다)의 결과인 오름의 연륜과 비교해 그 어감이 좀 가벼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핑계를 대자면, 내게 오름은 엠보싱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심리적 완충지대라고, 다시 힘주어 주장해 본다. 시인의 언어로는 ‘어머니 젖가슴’ 같은 것이 오름이다.
거의 모든 제주 여행에 오름이 있었다. 사실상 오름을 스치지 않고 제주 내륙을 여행하는 방법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추천하는 오름이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 달랐다. 제주에 오름이 368개(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나 되니, 제주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오름도 다양할 수밖에.
그래서 제주 오름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는 368개를 한참 전에 초과해 무한대로 커지는 중이다. 굳이 말하라면 제주 오름을 오른 사람의 수만큼 누적되는 중이다. 같은 오름을 또 올라도 계절마다 다 다르고, 기분에 따라서도 다 다르지 않나. 사진가 김영갑 선생이 20년을 반복해 담은 오름의 풍경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 꼭 가 보시라). 제주의 흙, 돌, 숲, 바람뿐 아니라 제주의 사람도 매일 오름에서 피고 진다. 각자에게 아끼는 오름, 궁금한 오름, 눈이 오면 가고 싶은 오름 하나쯤 있어야 제주를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