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직접 아궁이와 굴뚝의 경사도, 가마 내부구조를 복원해 전통 가마를 만들었어요. 젊을 때는 전통 가마에 도자기를 굽는 게 정말 재미있었는데, 불을 뗐다 하면 이틀을 꼬박 가마 앞을 지켜야 하니까 지치기는 해.
그런데 체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나무에서 생기는 연기와 열, 공기가 흙에 스며들 때 생기는 디테일이 가스 가마를 사용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거든. 장작의 크기, 장작과의 거리에 따라서 작품의 색감이나 밀도가 달라지고.
또 분청사기를 비롯한 모든 도자는 바람이나 습도, 온도 등 자연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장작불에 닿으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실력자라면 전통 가마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장에 분청사기뿐만 아니라 백자, 청자 등 다양한 도자가 있네요. 그중 분청사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조선 초기, 분청은 청자에서 파생돼 발전하기 시작했거든.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빚어 그 위에 백토를 발라 구운 것이 바로 분청사기죠.
그 위에 철화 안료나 칼로 정해진 도안 없이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요. 당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 연꽃이 문양 소재로 특히나 많이 등장했지.
분청사기에 그려진 서툴고 투박한 선에는 도공만의 개성이 녹아 있어요.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2017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88호로 지정)가 발굴돼 경상도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라는 것이 밝혀졌지.
관사명을 새긴 분청사기도 여럿 출토돼 공납용 분청사기 생산지였다는 사실도 드러났고. 가마터에서 발굴된 유물을 재현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김해 지역 도공으로서 분청사기의 명맥을 잇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죠.
상동 가마터에서 발굴한 김해 찻사발을 재현해 2009년 찻사발 명장으로 선정됐다고 들었어요.
김해 지역의 찻사발은 회색 자기에 섬세하게 찍은 도장 위에 백토를 발라 아름다운 문양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2001년부터 아홉 가지의 찻사발을 찾아 복원했고 아직도 좀 남았어요.
당시 어디서 정보를 구하겠어요. 처음엔 찻사발을 연구하는 학생을 찾아가 대뜸 어디 가면 이걸 볼 수 있냐고 묻기도 했어요.
일본 박물관에 우리나라 찻사발이 많다는 얘길 듣고 일본을 참 많이 오갔죠. 반구대 암각화를 알리는 건 6년하고 손 털었는데, 찻사발 재현은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 참 많은 세월을 보냈지.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옛 것도 좋지만 시대의 흐름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리고요. 호호당(한국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생활용품을 만드는 브랜드)과 함께 작은 찻잔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죠. 그게 선구자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