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행의 첫 페이지를 열다
Travel ; brary
새로운 여행의 첫 페이지를 열다
Travel ; brary
GIMHAE

 

가장 김해다운 도자기, 분청사기

50년 넘는 세월 동안 도공의 길을 걷고 있는 지암(志岩) 안홍관 선생. 그는 김해에서 나고 자라 부산, 울산 등 경남 지역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변치 않는 뜻을 새긴다’는 자신의 호처럼 고향에서 장인 정신을 이어가는 그에게서 도공의 삶과 철학, 김해 분청사기의 역사를 들었다.
도자의 뿌리 깊은 고장, 김해
예부터 흙과 나무, 물은 좋은 품질의 도자기를 결정하는 3가지 요소다. 흙은 도자기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재료이며, 나무와 물은 가마를 뗄 때 사용한다. 해상교통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원자재를 운송하거나 도자기를 유통하고 문화와 기술을 교류하기 위해 유리한 위치라는 뜻이니까. 김해의 상동면, 대동면, 생림면과 원도심 곳곳에서 분청사기 유물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형이 산지로 이뤄진 김해에서는 좋은 흙과 깨끗한 물, 도자기를 구울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낙동강 하구에 자리 잡아 내륙과 바다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흰색(粉)과 청색(靑)이 어우러진 자기(沙器)라는 뜻의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기까지 제작된 도자기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사이에서 성행한 분청사기의 과도기적 양식은 한국 도자기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왕실과 귀족 중심의 고급 도자였던 청자, 조선시대 선비나 사대부 계층이 사용한 백자와는 달리 서민층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점도 특징.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갈색의 흙 위에 백토를 입혀 다양한 문양을 새기거나 붓으로 그려 장식하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소박하고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김해 분청사기는 지역 특유의 토질 덕분에 독특하고 은은한 질감을 자랑하며, 형태와 문양에서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라지지 않는 흙과 불의 노래
김해 도자 문화의 뿌리는 이천 년 전 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야인은 토기를 1,200도 이상의 온도에서 구웠다. 고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야의 기술은 분청사기를 포함한 조선 도자기 제작에 많은 도움을 줬다. 가야토기와 분청사기 모두 소박하고 간소한 미감을 중시했고, 서민의 일상에서 사용된 생활 용품이었다.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기도 하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국 각지에 흩어졌던 도공은 김해로 다시 모여들었다. 수많은 조선의 도공을 일본에 빼앗겨 도자기 산업이 침체된 시기였지만, 남아 있는 이들이 협력해 새로운 터전을 이끌어 나갔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총 3차례, 김해 상동 골짜기에서 발견된 분청사기 가마터와 백자 가마터는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조선시대 대규모 도자기 제작소이자 도예 마을 ‘감물야촌(甘勿也村)’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관통하는 김해의 흙과 불의 노래는 여전히 재생 중이다.
Interview with 지암 안홍관 선생
도공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흙으로 뭘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마을에 매장된 토기를 파서 집으로 가져와 모으곤 했거든. 그걸 관찰하며 논에서 흙을 가져다 비슷하게 만들어보기도 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집안의 아재가 취직을 주선한 도자기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도공의 일을 배웠어요. 이 길을 걸어온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네.

무형문화재 제13호 도봉 김윤태 선생 밑에서 수련했다고 들었어요.
도자기 가게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가 경북 문경 출신이었어요. 어느 날, 동향의 도예가가 부산에 작업장을 차렸다고 해 같이 가보자고 하는 거예요. 그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작업물이 김해에서 만들던 것과는 다르더라고. 분청사기뿐만 아니라 청자, 백자가 있고, 또 당시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들었던 큰 크기의 도자도 있고. 그 인연으로 선생님 밑에서 5년간 수련한 후 제 작업장을 차렸어요. 독립을 일찍한 편이었지.

오랫동안 도공의 삶을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요. 독립할 때 쯤엔 이런 일도 있었지. 도서관에서 표지에 암각화가 그려진 책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찾아보니 당시 울산광역시로 통합하기 전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더라고. 주변에 묻고 물어 반구대를 찾아갔는데, 높이 4.5미터, 너비 8미터되는 거대한 암각화에 압도당하고 말았죠. 도자 작업에 활용하고 싶어 암각화 기록이 있는지 울산 시청에 문의를 했어요. 조각조각 나눠진 암각화 사진을 이어 붙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 암각화 속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 ‘암각화대호’예요. 암각화와의 인연을 계기로 1990년 울산에 자리를 잡았어요.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할 당시엔 암각화를 활용한 기념품도 만들었죠. 언젠가 텔레비젼 속 김대중 대통령 집무실에 당시 내가 만든 암각화 작품이 있더라니까(웃음).

울산에서 다시 김해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999년에 지금 이 자리, 생림면에 작업장을 지으면서 분청사기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울산에선 공예품을 많이 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작업에 몰두하고 싶더라고. 나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마당에 놓인 전통 가마가 인상적이에요. 전통 가마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가 직접 아궁이와 굴뚝의 경사도, 가마 내부구조를 복원해 전통 가마를 만들었어요. 젊을 때는 전통 가마에 도자기를 굽는 게 정말 재미있었는데, 불을 뗐다 하면 이틀을 꼬박 가마 앞을 지켜야 하니까 지치기는 해. 그런데 체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나무에서 생기는 연기와 열, 공기가 흙에 스며들 때 생기는 디테일이 가스 가마를 사용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거든. 장작의 크기, 장작과의 거리에 따라서 작품의 색감이나 밀도가 달라지고. 또 분청사기를 비롯한 모든 도자는 바람이나 습도, 온도 등 자연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장작불에 닿으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실력자라면 전통 가마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장에 분청사기뿐만 아니라 백자, 청자 등 다양한 도자가 있네요. 그중 분청사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조선 초기, 분청은 청자에서 파생돼 발전하기 시작했거든.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빚어 그 위에 백토를 발라 구운 것이 바로 분청사기죠. 그 위에 철화 안료나 칼로 정해진 도안 없이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요. 당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 연꽃이 문양 소재로 특히나 많이 등장했지. 분청사기에 그려진 서툴고 투박한 선에는 도공만의 개성이 녹아 있어요.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2017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88호로 지정)가 발굴돼 경상도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라는 것이 밝혀졌지. 관사명을 새긴 분청사기도 여럿 출토돼 공납용 분청사기 생산지였다는 사실도 드러났고. 가마터에서 발굴된 유물을 재현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김해 지역 도공으로서 분청사기의 명맥을 잇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죠.
상동 가마터에서 발굴한 김해 찻사발을 재현해 2009년 찻사발 명장으로 선정됐다고 들었어요.
김해 지역의 찻사발은 회색 자기에 섬세하게 찍은 도장 위에 백토를 발라 아름다운 문양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2001년부터 아홉 가지의 찻사발을 찾아 복원했고 아직도 좀 남았어요. 당시 어디서 정보를 구하겠어요. 처음엔 찻사발을 연구하는 학생을 찾아가 대뜸 어디 가면 이걸 볼 수 있냐고 묻기도 했어요. 일본 박물관에 우리나라 찻사발이 많다는 얘길 듣고 일본을 참 많이 오갔죠. 반구대 암각화를 알리는 건 6년하고 손 털었는데, 찻사발 재현은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 참 많은 세월을 보냈지.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옛 것도 좋지만 시대의 흐름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리고요. 호호당(한국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생활용품을 만드는 브랜드)과 함께 작은 찻잔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죠. 그게 선구자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

수요
쿠폰

Wednesday Coupon

롯데리조트가 엄선한 여행 혜택을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선착순 쿠폰으로 만나보세요.

※ 롯데리조트 홈페이지 로그인 후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선착순 혜택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Newsletter

트래브러리의 최신 소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