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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제주 해녀 문화를 잇다,
이호 현사마을의 막내 해녀 이유정

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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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부의 딸로 태어나 평생 바다를 바라보고 살다가 어느 날 그 물속으로 뛰어든 해녀 이유정.
20여 명의 해녀가 소속된 작은 마을의 해녀계에서 막내 역할을 씩씩하게 해 나가며,
제주 해녀 문화를 알리고 제주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녀를 만났다.
해녀가 더 이상 생계의 수단이 되지 않는 시대, 물질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가 고향인가요?
네, 제주 토박입니다. 제주어도 잘하고요. 누가 제주어 하나만 알려달라고 하면 “골민 아나?”라고 하죠. ‘내가 말하면 아니?’라는 뜻이에요. (웃음)
물질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2019년부터 물질을 하기 시작해서 이제 6년 차 해녀입니다.
어떻게 해녀를 직업으로 택하게 됐나요?
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을 했어요. 졸업 후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주가 그리웠던 것 같아요. 4년을 버티다 결국 제주로 돌아온 날, 집 옥상에 올라가 엉엉 울면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다시는 떠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래오래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물질하는 동네 해녀 삼촌들을 보고 떠올랐어요. ‘맞다, 나 해녀 하고 싶었지.’
해녀라는 직업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궁금해요.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부셨어요. 어릴 때부터 어촌 마을에 살다 보니 뱃소리만 들어도 아버지 배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정도였죠. 아버지를 마중 나가면 배에 타고 계시던 해녀 삼촌들이 저를 무척 귀여워해주셨어요. 테왁(해녀가 물질할 때 의지하는 작은 부표)에 가득한 소라를 몇 개 꺼내 주시기도 하고요. 어린 눈에 그 모습이 산타 같기도 하고, 멋있어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해녀가 되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죠. 그 기억이 자연스럽게 지금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정식 해녀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셨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부모님 반대가 정말 심했어요.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바로 뒤 돌아서셨고, 어머지는 매일 우셨죠. 저희 가족 중에 해녀가 있었다면, 아마 저도 해녀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아니까요. 해녀가 되려면 일단 해녀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 어촌계와 해녀회에 차례로 가입해야 해요. 해녀회에서 삼촌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만 정식 해녀가 될 수 있죠. 전부 동의할 때까지 7년을 기다려 해녀가 되신 분도 있어요. 저는 당시 해녀학교 경쟁률이 6대 1로 꽤 높은 편이어서 1년을 기다렸다가 겨우 입학했고요, 수영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일단 수영을 배우고 스킨 스쿠버 자격증도 따면서 부모님을 계속 설득했죠.
해녀가 되기 전과 후, 고향 제주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다른지.
달라졌다기보다 어촌에 살면서도 이전까지는 겉만, 그러니까 육지 풍경만 봐 왔지, 물속은 들여다보지 못했잖아요. 바닷속 지형까지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우리 동네 바다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물고기가 많구나, 하고요. 그러면서 제주도를 더 깊이 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호 현사마을에서 나고 자라셨다고 들었는데, 이 지역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주공항 동쪽, 이호테우 해변에 있는 전통 어촌 마을이에요. 증조할아버지부터 3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어요. 해변 끝에 있는 양식장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죠. 해수욕장 앞바다는 평평한 모래밭인데 중간중간 있는 돌덩어리 틈에 소라랑 문어가 살고 있고, 빨간색과 하얀색 목마 등대 주변은 ‘서바다’라고 부르는 가장 넓은 바다가 펼쳐집니다.
철마다 수확물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3월과 4월은 미역철이라 바닷속이 초록빛이에요. 5월에는 우뭇가사리가 많이 잡히죠. 6월부터 8월까지는 성게철이 이어져요. 7~8월 중 일주일 정도 보말 잡는 시기가 껴 있고요. 1~2월엔 소라랑 홍해삼이 잡히는 시기예요. 5월부터 10월까지는 소라가 알을 낳는 기간이라 금채기고요. 아무래도 여름에 물질 하는 날이 가장 많죠. 특히 성게철에는 하루도 안 쉬고 물에 들어가요.
물질을 할 때 가장 힘든 점과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파도가 높고 거센 날이 가장 힘들어요. 바닷속에서 균형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테왁을 놓치기 쉽거든요. 테왁을 놓치면 그 날은 하루 물질이 허탕인 셈이나 마찬가지예요. 반대로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뭐든 잡은 순간이죠! 사람한테도 사냥 본능이 있어서 눈에 수확물이 보이면 숨이 찬 것도 잊고 욕심을 부리게 돼요. (웃음)
해변 플로깅 활동도 적극적인 걸로 알고 있어요.
거의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물질 하러 들어갈 때 고무신은 해안가에 벗어두고 두툼한 양말만 신은 채 물속에 들어가거든요. 이호테우 해변만 해도 관광객이 많다 보니 해안가는 물론, 바닷속에도 쓰레기가 정말 많아요. 어느 날 물질 하러 걸어 들어가다가 유리 파편에 찔려 발바닥이 찢어진 거예요. 그 이후로는 물속에 들어가면 쓰레기만 보이더라고요. 혹시나 해녀 삼촌들이 다치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처음엔 해산물 안 잡고 쓰레기만 치운다고 삼촌들한테 혼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들 거들어주세요.
해녀가 되기 위해, 그리고 해녀로서 오랫동안 일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체력과 공동체 의식. 해녀를 하려면 ‘나만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 안 돼요. 함께 물질하는 해녀 삼촌들의 수족이 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고요. 사실 예전처럼 100퍼센트 생계를 위해 물질을 하는 시대는 지났죠. 바닷속 풍경에 감동할 줄 알고,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최연소 해녀' '젊은 해녀' 'MZ 해녀' 등으로 불리는데, 부담감이나 책임감은 없는지요.
저 스스로 해녀라고 내뱉었기 때문에 책임감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냥 이유정이 아니라 ‘해녀’ 이유정이기 때문에 관심도 받는 거고요. 그 귀한 직함이 제 이름 앞에 붙었으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죠. 나중에 제 묘비에도 ‘해녀 이유정’이라고 써 있으면 좋겠어요.
제주 해녀 문화 중 꼭 지켜 나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만약 제가 물질 하러 나가서 아무것도 못 잡으면 삼촌들이 각자 잡은 걸 나눠 주시는데, 그걸 ‘게석’이라고 해요. 본인의 수익을 기꺼이 나눠줄 만큼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제주 해녀 문화의 특징이죠. 2016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제주 해녀가 아니라, 바로 그 해녀 문화고요. 지금 현직에 있는 해녀 한 명, 한 명이 제주의 해녀 문화,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제주에 남아 있는 해녀가 2,800명 밖에 안 되는데요, 그중 4~50대 해녀가 4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 80대예요. 그들이 최대한 건강하게 오랫동안 물질을 해야 제주 해녀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좀 더 오래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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