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와인 장면에 빠져드는 클래스 참가자들, 그리고 책에서 발견한 양들의 침묵과 와인
영화 속 와인이 있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글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해리 하트(콜린 퍼스)’와 ‘발렌타인(샤무엘 L 잭슨)’에게 빅맥과 함께 서빙된 와인(샤토 디캠 1937) 장면 말고는 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유일한 기억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엄정선 소믈리에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아, 맞다’를 외쳤다. 알고 보니 이전에 봤던 영화들 속에는 곳곳에 와인이 숨어있었다. ‘키아누리브스’의 영화에는 와인과 관련된 장면이 유독 많이 있단다. <구름 속의 산책>은 시종일관 포도원이 배경이다. 젊은 키아누리브스가 포도를 수확하고, 여자들이 커다란 오크통에서 포도를 밟아 즙을 내는 장면 등은 애호가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한다. <매트릭스>에서는 프랑스 보르도 5대 샤또 중 하나로 꼽히는 ‘샤또 오브리옹’ 와인이 등장한다. 엄정선 소믈리에는 끊임없이 영화 속 와인에 대해 읊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리 많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수가 있나’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영화에 이토록 조예가 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 시절 연극영화과를 전공했기 때문이다. 남편이자 공동 저자인 ‘배두환’씨 또한 와인 저널리스트이자 기자 출신이다. 이토록 닮은 부부는 제주 대평리에서 와인샵 ‘슬기로운 와인생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와인클래스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제주 어느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사 들고 탑동광장 방파제로 향했다. 파도에 흩어지는 도시의 불빛, 짙은 와인향. 아무래도 좋던 와인이 더욱 세밀하고 농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