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도 가장 제주다운 곳을 꼽으라면 성읍민속마을이 아닐까. 제주 서귀포 표선면에 자리한 성읍민속마을은 제주를 여행하는 이라면 꼭 한번 찾아볼 만한 곳이다. 전통 초가지붕을 인 집들 사이로 현무암 돌담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검은 돌담 속에는 초록의 당근밭이 펼쳐지고 길옆으로 이끼 가득한 팽나무가 자란다. 제주가 아니면 만나지 못할 풍경이다.
글.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정의현의 중심 마을
성읍마을은 이름 그대로 성안에 마을이 있다.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처럼 일부러 만든 테마파크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1400년대부터 마을이 세워졌는데, 지금도 1,20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간다. 국내 관광객은 물론이요 대만,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제주의 민속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1984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됐다.
성읍마을은 조선시대 때 정의현에 속해 있었다. 1423년(세종 5년) 제주도는 세 군데의 행정 구역으로 나뉘는데, 지금 제주시가 있는 중심 부분은 제주목이었고, 중문관광단지로 가는 서쪽은 대정현이었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이 있는 동쪽이 정의현이었다. 성읍마을이 바로 정의현의 중심, 즉 도읍지였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객사와 정의향교가 당시 성읍마을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옛 도읍의 흔적
마을을 걷다 보면 옛 마을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성읍1리사무소에서 성읍마을 방면으로 걸어가다 보면 검은 현무암으로 높이 쌓은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770미터에 이르는 성곽은 옛 모습 그대로 마을을 둘러싼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성안으로 발걸음을 이어가면, 오른쪽으로 먼저 근민헌이 보인다. 옛날 정의현감이 공무를 보던 곳이다. 1914년에 정의고을이 폐지된 후 허물어 터만 남았지만 2014년 복원했다고 한다. 건너편에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팽나무들이 서 있는데, 느티나무는 높이가 30미터가 넘고 둘레가 약 5미터에 달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가 않다. 수령 1,0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성읍마을에서 가장 늙은 존재라고 한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의향교에 이른다. 이 향교는 1423년(세종 5년)에 처음 지었다가 1849년(헌종 1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한국의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명륜당, 대성전, 동재, 서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교 가는 길 주위로는 ‘새(볏짚)’를 올린 제주 전통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리한다. 자세히 보면 지붕에 두께 5센티미터 정도의 밧줄을 꼬아 촘촘하게 묶어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제주에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다.
대문 대신 정낭이랍니다
성읍마을의에서는 집집마다 돌담 끝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 양쪽에 커다란 돌기둥을 하나씩 만들어 놓고 긴 나무막대를 걸쳐 둔 것을 볼 수 있다. 돌기둥은 ‘정주석’이라 부르고, 나무막대는 ‘정낭’이라고 한다. 정주석과 정낭은 대문을 대신하는 것인데, 제주에는 평상시에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태풍이 잦기 때문에 대문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정주석과 정낭으로 대문을 대신한 것이다.
정낭은 단순히 대문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집주인의 상태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정낭이 3개가 모두 가로로 걸쳐 있는 것은 집주인이 멀리 나가 있다는 뜻이고, 다 내려져 있다면 주인이 집에 있다는 표시다. 정낭 2개를 걸쳐두고 1개를 내려두었다면 주인은 조금 먼 곳에 외출을 간 것이고, 반대로 1개를 걸쳐두고 2개를 내려두었다면 가까운 곳에 나가 있다는 표시다. 제주에서는 옛날부터 말이나 소를 방목했는데, 정낭 3개가 모두 걸쳐 있을 때는 먼 곳에 간 주인 대신 이웃 주민들이 가축을 돌봐주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객사와 가옥
마을 곳곳에는 제주의 옛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건축물이 많다. 마을 한복판에는 자리한 정의현 객사는 맞배지붕을 인 3칸짜리 건물로,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의 숙식을 담당하던 곳이다. 고을 수령이 이곳에서 한 달에 두 번씩(초하루와 보름)씩 왕을 상징하는 궐패에게 예를 올렸고, 때로는 백성과 유지를 모아 잔치를 열고 마을을 찾은 손님에게 연회를 베푸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창환 고택과 한봉일 고택, 고평오 고택 등 옛 서민들의 집과 객주집도 있다. 정의향교 바로 옆에 위치한 고창환 고택은 마을의 여인숙이었던 곳이다. 오늘날에도 성읍 주민들은 이곳을 ‘여관집’이라고 부른다. 한봉일 고택은 동문 옆 성벽 아래 자리 잡았는데, 문을 달지 않은 대문간과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로 구성되어 제주 서민의 집 구조를 잘 보여준다. 고택 앞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남문 앞에 자리한 고평오 고택에는 옛날 제주식 돼지우리와 변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지인이 제주의 민속 문화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게 바로 제주 전통 화장실인 ‘통시’다. 제주도에는 화장실 밑에 담을 쌓아놓고 인분을 먹여 돼지를 키우는 특유의 문화가 전해지는데, 제주 속담 중에 “사둔칩광 통신 멀어사 좋다(사돈집과 통시는 멀어야 좋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물론 요즘에는 실제로 통시를 사용하진 않고, 통시와 흑돼지를 재현한 모형만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다.
제주 메밀떡을 맛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이렇게 성읍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걷다 보면 걸음은 자연스럽게 남문에 닿는다. 옛날엔 남문 위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봤지만 이제는 그 통로를 막아놓아 아쉽다. 대신 남문 앞에 서 있는 돌하르방의 은근한 미소가 이 아쉬움을 위로해 준다.
남문 앞에는 여행자의 두 다리를 쉬어 갈 만한 카페가 여러 곳 들어서 있는데, 그중 ‘초가시월’을 추천한다. 카페 내부를 제주 전통 분위기로 꾸며놓았고, 가을 햇빛이 좋은 날에는 야외에 앉아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 집은 메밀별떡과 가래떡이 맛있다. 모두 제주 메밀을 사용하고, ‘금화규’ 잎의 분말을 첨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화규는 흔히 ‘천연 콜라겐’이라고 불리는 꽃으로, 카페의 주인장이 직접 분말을 만든다고 한다.
오메기떡은 원래 술떡
제주를 여행하고 갈 때 선물로 사는 것 중 하나가 오메기떡이다. 그런데 사실 기념 선물로 판매되는 오메기떡은 1990년대에 개발된 것이다. 진짜 오메기떡은 ‘술떡’이다. 원래 오메기떡은 오메기술을 빚기 위해 만든 것으로, 발효를 잘 시키기 위해 도넛처럼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차조로 익반죽해 만든 술떡이 잘 익도록 가운데를 오목하게 눌렀는데, 이 모양을 보고 ‘오메기떡’이라고 부른 것이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물이 잘 빠져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조와 보리를 주로 먹었다. 먹을 쌀도 모자른데 술을 어떻게든 빚어야 했으니 제주 사람들은 차조를 재료로 오메기술을 양조해서 제사와 크고 작은 집안 행사와 명절 때 마셨다. 오메기술은 쌀로 만든 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좁쌀의 향기와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 성읍마을 남문 앞에 자리한 무형문화전수관을 방문해보면, 전통 오메기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