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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쌓인 시간의 풍경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방법

백제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겨울의 부여에 겹겹히 쌓인 시간을 풍경으로 확인하는 방법, 충남 부여 자동차여행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누리다, 무량사
만수산의 천년고찰 무량사에 도착하자 일주문에 적힌 ‘만수사무량산’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가장 먼저 두 눈을 사로잡는다. ‘만년을 누린다’는 만수(萬壽)와 ‘헤아릴 수 없다’는 무량(無量). 산과 절의 이름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무량사는 9세기 통일 신라 시대에 세운 사찰이다. 주변 산세가 워낙 아름답고 울창해 천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가 찾는다. 사찰이 보유한 국가지정 보물 8점과 지방문화재 10여 점도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다.
일주문을 통과하자 안정적인 구도로 배치된 석등과 5층석탑, 극락전이 맞이해준다. 이른 아침,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2층짜리 전각 안에서 스님이 법문을 외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진다. 절도 있는 목소리에 경내를 걷는 걸음걸이가 절로 단정해진다. 무량사 곳곳에는 생육신 중 한 명이자 당대 천재 작가로 불리던 김시습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속세를 벗어나 스님이 되어 세상을 떠돌던 그는 무량사에서 말년을 보내다 59세에 입적했다. 영전각에 걸린 그의 초상화에서는 상념에 빠진 듯한 표정이 넌지시 보인다.
무량사의 옛 부도에 모셔져 있던 김시습의 사리는 일제강점기에 부도가 무너지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났다. 그후 한동안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던 사리는 2017년에야 다시 무량사로 돌아왔다. 무량사는 새로 세운 승탑에 사리를 다시 안치했고, 그 옆에 놓인 시비에 김시습의 시 한 편을 새겼다.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 산사의 저녁 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 이슬에 젖는데 /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 롯데리조트부여에서 무량사까지 차로 약 30분 걸린다.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경양식 돈까스의 정석, 소담돈까스
소리 없이 내리는 눈만큼이나 조용한 마을 깊숙한 곳에서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대화가 피어오른다. 경양식 돈까스 전문점 소담돈까스는 10여 년 전, 부여로 귀촌한 양식 전문 요리사가 딸의 이름을 내걸어 문을 연 곳이다. 100퍼센트 예약제로 점심에만 운영한다. 옛날 집을 개조해 자개장롱과 자수 오브제 등 빈티지한 소품으로 꾸민 내부는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온 듯한 분위기. ‘옆집 사과’라 이름을 붙이고 판매하는 투박한 사과 봉지에서 정겨운 시골 감성도 느껴진다.
메뉴는 소담돈까스(경양식 돈가스), 매운 돈까스, 치즈 돈까스, 꿀피자 총 4가지다. 소담돈까스는 얇게 저민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에 매콤 달콤한 수제 특제 소스를 얹은 시그너처 메뉴. 성인 2명의 얼굴을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부여 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 샐러드가 함께 나온다. 돈가스 때문에 배가 불러도 꿀피자 한 조각은 맛봐야 한다. 얇고 바삭한 도우와 부드럽게 늘어지는 치즈의 고소함, 꿀의 달콤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이 손을 놓기 힘들게 만든다.
+ 무량사에서 소담돈까스까지 차로 약 15분 걸린다.
  • 충남 부여군 내산면 성충로미암길 8
부여 최초의 성당, 금사리성당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논밭 풍경이 차창 밖으로 이어지다 금사리 마을에 닿는다. 주택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마을 가운데에 소박한 옛 성당이 있다. 금사리성당은 1906년 완공된 부여군 최초의 성당이다. 남아 있는 건물은 본당과 사제관 2동으로, 우리나라 초기 성당 건축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내부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중앙에 세운 나무 기둥을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 마루에 표시한 흔적도 그대로다. 세 개의 회랑을 갖춘 일반 성당과 달리 전례 공간을 둘로 나눈 것은 금사리 성당만이 갖는 건축적 특징이다.
금사리성당은 부여를 포함해 청양, 보령, 서천 등 일대 여러 지역을 아우르는 신앙 공동체의 거점이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주임신부 몰리마르가 순교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후 1968년 본당 옆에 새 성당을 건립했고 충청남도 서남부 지역의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했다고. 성당 한편에는 성지순례를 온 신자들의 방명록이 놓여 있다. 농촌의 쇠락으로 예전만큼의 활기는 없지만, 순례자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한 이곳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 소담돈까스에서 금사리성당까지 차로 10분 걸린다.
  • 충남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
  • 월~토요일 11:30~14:00
한옥에서의 서정적 시간, 합송리994
‘부부가 직접 고친 한옥 카페’로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유명해진 합송리 994는 추운 날에 더욱 빛을 발하는 공간이다. 헌책과 옛날 가구, 소품 등으로 따뜻함을 더한 기품 있는 한옥의 겨울을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 평상과 소반, 기왓장, 장독대 등 정겨운 시골 풍경이 응축된 마당에 들어서니 운영자 부부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한옥의 총면적은 약 1,300제곱미터. 별채는 귀촌한 운영자 부부의 생활 공간, 본채는 이곳의 주소를 이름으로 내건 카페로 활용하고 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가 합송리 994의 대표 메뉴다. 케이크나 푸딩 등의 디저트도 판매하는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식자재로 만든 메뉴도 인기 있다. 제철인 딸기를 활용한 ‘딸기딸기’는 수제 딸기청을 유리잔 바닥에 깔고 생딸기를 차곡차곡 쌓아 생크림과 쿠키를 얹은 상큼한 맛이 일품. 테이블마다 따뜻하게 데워진 코타츠 안에서 잠시 추위를 피하며 휴식을 즐겨보자.
+ 금사리성당에서 합송리 994까지 차로 약 10분 걸린다.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흥수로 581-6
  • 금~화요일 11:00~18:00
사랑나무 앞에 서면, 가림성
매년 1월 1일, 임천면 성흥산에서는 신년을 맞이하는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주차장이 산 중턱에 자리한 덕분에 정상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어 많은 군민이 참여한다고. 해맞이 장소는 해발 250미터 정상부에 위치한 가림성이다. 성흥산성이라고도 불리는 가림성은 백제 동성왕 23년(501년)에 축조했다. 백제 시대 성곽 가운데 유일하게 축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최근 가림성은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으로도 더 유명하다. 반쪽 하트 모양으로 흐드러진 느티나무가 ‘사랑나무’로 알려지면서 드라마 촬영지, SNS 사진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느티나무 아래에 서자 눈앞에 금강 하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왜 이곳에 산성을 지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오늘날의 논산, 강경, 서천, 익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니, 당시 백제의 수도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에 좋은 위치였으리라. 성 내에서는 우물터, 식량 창고로 추정되는 터, 초석과 남문 터 등 백제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여러 시대의 유물이 발견됐다. 그만큼 오랜 시간 부여 사람들에게 든든한 기댈 곳이 되어준 상징적 장소가 아닐까 싶다.
+ 합송리994 카페에서 가림성 주차장까지 차로 약 20분 걸린다.
  • 충남 부여군 성흥로97번길 1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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